[Log] 흑백요리사에서 본 장인 정신
장안의 화제의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를 보면, 가지각색의 요리와 과연 그 맛이 너무나도 궁금해지는 심사평으로 시리즈를 보기 시작하면 끊을 수 없을 정도로 즐거웠다. 흑백요리사 시리즈를 보면서 매번 보이는 요리들도 너무 맛있어 보였지만, 그보다 요리에 대해 진지한 100명의 셰프들의 요리를 대하는 태도와 모습에 매 순간 감명받았다.
근래 봤던 최고의 시리즈였다 |
셰프도 장인의 영역이 있어서 그럴까 이들이 요리를 대하는 모습과 태도, 그리고 경쟁이나 새로운 도전에 받아들이는 모습은 하나 하나 멋진 모습들 밖에 없었고 그 중에서도 백요리사로 출전한 이들의 인터뷰와 모습들은 더더욱 울림을 주는데, 장인 정신에서 느껴지는 감명을 깊게 느낄 수 있다. 많은 부분이 있었지만 나는 '트리플스타' 라는 이름으로 출전한 강승원 셰프의 모습이 너무 좋았다.
트리플스타 이장면 진짜 ㅈ되는점
— ㅡ (@heygatlaozu) October 3, 2024
딤섬피 두꺼워서 안예쁜데? 하자마자
얇게썰어본다더니 정신병자칼질스킬 보여주고
얇은게 더예쁘다고 자기가 싹다썰겟다고함
뱉은말 지키려고 리얼 잠안쳐자고 5시간동안 딤섬피만썬게 진짴ㅋㅋ pic.twitter.com/caMTLUS6JQ
결과물에 대한 집요함이 보여주는 모습이 같이 일하는 누군가에게는 두렵거나 질리는 모습일지 모른다. 나는 저 장면을 보면서 결과물에 저렇게 고집스러운 모습을 나도 본받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쩌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도 이렇게 일할 수 있는 모습이 있지 않을까? 현실세계에서 우리의 동료들에게서 느끼는 모습과 비슷한가? 어쩌면 동작하는지 테스트 제대로 안해보고 API 던지는 백엔드 (내 얘기다), 페이지 만들어보고 꼼꼼하게 테스트 안 보고 올리는 프론트 (내 얘기다) 의 모습이 더 흔하지 않나? 본인이 내놓는 음식 먹어보지도 않고 문제없다고 우기는 백종원 골목식당 솔루션 받아야 하는 매장 사장님같은 모습은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그 힘든 미션에서 주방까지 깔끔하게 했다 |
나의 작은 의견으로, 최근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가끔 보게 되는 글들이 있다. '진개라이팅(진짜개발자+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야 한다', '개발자에게 성장이 꼭 필요한게 아니다' 같은 글들을 보게 된다. 물론 개인의 마음을 잘 챙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야기할 필요성도 충분히 동감한다. 다만, 나는 소프트웨어를 더 잘 만들기 위해서 집요하게 붙잡고 더 좋게 만들 방법을 고민하는 이들이 업계에 계속 더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손님 나가는 음식에 예민한 셰프들 처럼 나가는 제품의 버그 하나에 민감하고 티끌같은 Exception 로그, 성능상의 버벅임 하나에 목숨거는 집요함이 소프트웨어의 품질을 정하는게 아닐까.
테스트 커버리지가 이븐하지 않았어요 |
조금 더 강하게 말하자면 본인이 작성하는 소스코드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게 최선이었는지 더 개선할 방법이 있는지 끊임없이 열린 마음으로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프로그램을 보는 동안 출연했던 많은 백요리사들의 도전정신과 끝나고 나서 인터뷰에서 느껴지는 그들의 말들을 살펴보면, 고수에 이른 이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살짝 살펴볼 수 있다. 단순히 "XXX을 모르면 너는 주니어다!" 와 같이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지금 작업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더 잘 하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만 갖고 있어도 그 자체로 훌륭하지 않은가.
지금도 종종 열리는 여러 개발자 컨퍼런스 표가 항상 마감되고 이런 저런 곳에서 잘하는 스터디에 참가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모이는데, 이 모든 분들이 다 그런 모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하다보면... 힘들다.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경우에 따라 재능의 차이로 누구는 조금 쉬워보이고 나에게는 좀 더 힘들어 보일 수 있는데, 그렇다고 이 모든 과정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나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수용해야하는 안타까운 사실 중 하나는, 요리와 비슷하게 우리는 소프트웨어의 모든 세계를 전부 알 수는 없다. 내가 가까이 하는 기술 영역에 있어서 조금 더 깊이를 만들 수 있지만 아무리 평생을 노력해도 모든 영역을 다 알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니 조금 더 즐기는 마음으로 오래오래 업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장인 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더 퍼졌으면 좋겠다. 나부터도 그렇고.
조금 다른 이야기
요즘은 개발자들의 고집보다 비즈니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소프트웨어의 품질을 챙기려다 비즈니스의 속도를 저하시키는 사례를 이야기하며, 개발 품질에 민감한 이들의 활동을 '큰 회사에서나 하는 일들', '일은 잘 못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 정도로 낮게 평가하는 걸 스타트업 계열의 사람들 만나면 '가끔' 들을 수 있다. '회사에서는 예술을 하는게 아니라 일을 해야 한다' 같은 멘트도 비슷한 평가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타트업에 있었던 CTO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내 생각에도 당연히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아니 내가 기사식당 사장인데, 주방장이 손님 밀려있는데 파채를 예쁘게 썰어야 한다고 파인다이닝 하고 있으면 그걸 지켜보기 얼마나 괴롭겠나?
기사식당에서 파인다이닝은 하면 안되는게 맞지 |
다만 실패한(?) CTO였던 내 생각으로, 현실 세계에서 내가 일하는 업장이 파인 다이닝 식당이 아니라 기사식당에서 일할지언정 주방이 지저분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러면 직업으로 하는 프로그래밍 영역에서 위생의 영역은 어디까지이고 파인 다이닝의 영역은 어디까지인가를 구분한다고 하면, 구분하기 쉽지 않겠다. 각 개인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다.
테스트 코드를 사랑하시는 분들에게 테스트 코드는 꼭 해야하는 위생의 영역일 것 이고, 테스트 코드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분들께는 파인 다이닝에서나 하는 영역으로 볼 것이고, 더 싫어하시는 분들은 의미없는 식용 꽃으로 보일수도 있겠다. 코드 리뷰는 직업 프로그래머로 해야하는 기본 같은 것인가, 파인 다이닝에서 하는 고객이 알아차리기 어려운 미묘한 요소일까?
줄인 이야기 1: 물론 이게 가정을 포기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쓰리스타 셰프도 가정이 중요하다고 한다. https://guide.michelin.com/kr/ko/article/people/genesis-what-drives-me-mosu-sung-anh
줄인 이야기 2: 왠지 이런 글 마지막에 친했던 동료가 이럴 것 같다. 어이 제씨 채써는거 그만 붙잡고 제육이나 얼른 볶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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